1987.10.30
한겨레 창간 발기 선언대회
서울 명동 기독교여자청년회(YWCA) 대강당에서
해직 기자 등 각계 인사 1000여 명이 모여
문자 그대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신문”을 만들겠다고 발표.
신문사 설립에 필요한 돈을 50억으로 정하고
1주당 5000원, 출자 상한 1인당 5000만원(1%) 이내로 정해 국민 모금 시작.
1987.11.18~1988.4.28
서울시청, 종로2가, 서울역 등에서 <한겨레신문 소식> 1~10호 배포. ‘한겨레신문’이라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30여 명이
아침마다 서울 시내 누볐음.
시간이 갈수록 이 소식지의 인기가 높아져 나중에 수십만 부를 찍어냈음. 소식지 첫 호 1면엔 “해직 기자들이 새 신문을 만듭니다”, “온
국민이 주인인 새 신문, 한겨레신문은 39억 3000만원이 더 필요합니다”
1987.12.16
노태우 대통령 당선.
다음날부터 창간사무국에 후원 전화 빗발침.
1988.2.25
창간기금 모금 완료.
108일동안 창간기금 모금에 참여한 시민은 2만7223명.
경력기자 38명, 수습기자 23명 채용.
1988.5.15
<한겨레신문> 창간.
참언론이 되겠다는 다짐과 송건호 초대 발행인의 창간사와 함께 백두산 천지 사진을 1면에 실었음.
1989.4.15
리영희 고문, 임재경 부사장 등 한겨레 간부를 연행, 구속하는 정부의 탄압에 굴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1면에 밝힘.
1991.12
한겨레 국민 주주 6만 명 돌파
1992.9.1
인터넷 한겨레 PC통신 기사 서비스 시작
1994.1
<한겨레21> 제호 공모에 열흘 동안 시민 2만5041명 참여
1994.3.16
<한겨레21> 창간
1995.4.24
'최초 영화 주간지 <씨네21> 창간'
1996.8.27
창간 뒤 줄기차게 5공 적폐를 들추어 알렸던 <한겨레신문>이 마침내 전두환씨 사형, 노태우씨 22년6개월형이 선고된 12·12와 5·18 재판 결과를 1면 보도함
1996.10.14
<한겨레신문>에서 <한겨레>로 제호 변경
1997.6
한겨레 통일문화재단 출범
가수 서태지와아이들 등 시민 3만2천여명 발기인으로 참여
1997.6
북녘 어린이 돕기 캠페인
2000.6.14
55년 만에 손을 맞잡은 남북 두 정상,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을 1면에 담음.
2001.2.15
<한겨레21> 양심적 병역 거부를 다룬 표지이야기 이후
이슈를 앞장서 주도
2002.12.09
누적된 경영 위기 상황에서 95%가 넘는 사원들이 퇴직금 출자전환에 참여.
전체 주식 중 한겨레 임직원들의 주식 보유 비율이 4%에서 38.5%로 늘어나고 총자본금도 198억에서 311억원으로 증가. 2003년 11월
입사한 기자들의 첫 월급은 63만6330원
2004.9.08
노사 합동 비상경영위원회 출범. 인건비 줄이기 위해 한겨레 구성원 80여 명이 퇴사
2005.1.14
<한겨레> 1면에 보도된 태국 이주 노동자들, 한겨레 제2창간 발전기금 147만원 기부
2005.4.20
<한겨레신문> 제2창간운동본부 출범.
5200여 명이 새로 국민 주주로 참여
2005.5.15
창간 17주년 맞아 ‘한겨레 결체(한결체)’ 글꼴 선보여 무료 배포.
한결체로 제호 변경
2006.1
독자와 언론 사이를 이어주는 시민편집인 제도,
독자권익위원회 도입
2007.1.29
한겨레 취재보도준칙 제정 및 공포
2007.2.28
진보적 민간 싱크탱크인
한겨레경제연구소 설립
2007.3
인터넷 한겨레 동영상 뉴스 서비스 시작
2007.4.27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폭행 사건 1면 보도
2007.5.25
‘삼성 편법 대물림 구조조정본부 주도’
1면 보도
2007.7.17
<한겨레21> ‘이명박의 거짓말’ 표지이야기 등
한겨레-한겨레21 BBK 및 다스 의혹 집요하게 보도.
이명박씨, 한겨레 상대로 50억 손해배상 소송
2007.10.30
김용철 변호사 삼성 비자금 폭로 1면 보도.
이후 끈질긴 삼성 비자금 추적 보도.
이때부터 2009년까지 삼성이 한겨레에 광고 게재 중단
2008.6.10
촛불집회 보도로 한겨레 구독, 시민 광고 통한 후원 문의 폭증
2008.6.11
1987년 6월항쟁 이후 21년 만에 최대 규모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촛불집회 현장 1면 보도
2009.1.20
용산 철거민 참사 부른 경찰의 토끼몰이 진압 순간 사진 보도
2009.5.12
웹 방송 ‘하니TV' 개국
2009.5.24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 호외, 일요일 신문 발행
2009.9
<한겨레21> 빈곤노동 현장 위장취업 르포 ‘노동OTL' 기획 연속보도로 새로운 탐사 저널리즘 모델 제시
2010.5.17
삼성반도체 발암성 물질 사용 확인 1면 보도 등 끈질긴 백혈병 산재 보도
2012.1.28
한겨레 토요판 첫 호 발간
2012.3.03
<한겨레>의 집요한 보도로 수족관에 갇혀 지내던 돌고래 ‘제돌이’가 제주 앞바다로 돌아감
2013.1.13
국정원 직원 댓글 작성, 대선 여론조작 사건 1면 특종 등 연속 보도
2013.5.20
‘전두환 재산을 찾아라’ 1면 보도 이후 140건의 제보 접수, 특별취재팀 운영
2014.6.16
세월호 참사 희생자 116명을 기록해 추모한 ‘잊지 않겠습니다’ 1면 연속 보도
2014.12
‘조현아 대한항공 당시 부사장의 ‘땅콩회항’ 최초 보도
2015.5.04
아동학대 사망사건 전수조사 ‘부끄러운 기록 아동학대’ 탐사기획
2016.9.20
‘최순실’ 이름 세 글자를 1면에 내는 것을 시작으로 연이어 최순실 게이트 특종 보도
2016.11
한겨레의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응원하며 2400여 명이 새로 한겨레 주주로 합류
2017.3.11
헌정 사상 첫 현직 대통령 탄핵을 보도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뒷모습과 촛불 시민들의 사진 1면 보도
2017.8.28
동물 전문 매체 애니멀피플 창간
2017.9
강원랜드 등 공공기관 300곳 채용비리 탐사취재 1면 보도
2018.10
혐오와 거짓정보를 확산하는 이들을 추적한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탐사기획
2019.3
<한겨레21> 후원제 도입
2019.5
언론사 최초 ‘젠더데스크’ 도입
2019.05.19
기자가 직접 요양보호사가 되어 현장 취재한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시리즈
2019.11
n번방 성착취 실태 탐사취재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보도
2021.5
'한겨레 서포터즈 벗' 출범.
디지털 독자가 한겨레 후원회원으로 가입하는 구조의 '국민 후원 디지털 미디어'로 거듭남.